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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1 [번역] 솔로몬이여 내가 돌아왔다 - 해삼의 맛 by maki


[번역] 솔로몬이여 내가 돌아왔다 - 해삼의 맛 by maki

너희가 막말을 아느냐 | 2011/11/01 11:15

"수많은 영령이 헛되이 목숨을 잃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지온 이상의 깃발을 높이 들기 위해! 스타더스트의 성취를 위해! 솔로몬이여! 나는 돌아왔다!"
꺼져 이 사이비 사무라이야. (솔라레이 빔)

긴상 생일 따위는 두름치기 2박자 스텝으로 슬슬 넘겨버리고 헬게이트를 빙자하여 하도 오래 블로그를 방치했더니 이젠 글 쓰는 법조차 슬슬 까먹을 것 같은 KISARA입니다 이예이. 자랑이 아냐 이뇬아. 게을러서 죄송합니다 느려터져서 죄송합니다 슬로스라 죄송합니다. 이제 시동 걸어야죠. 박원순 후보의 승리 기념으로 비아이 님께 변태 포스팅 3탄 리퀘도 받아버렸고. '결코 전쟁하지 않는 삼국지'(....)도 있고. 뭔가 무덤 판 기분이 아주 안 들지도 않지만 걍 넘어가요 걍 넘어가.
하여간 모이기만 하면 답도 견적도 없는 진선조에 마리아나 해구보다 깊이 절망하고 답은 없지만 견적은 나오는 양이팀에 우폭;하다 '결국엔-부장-욕질하고-갈구면서-끝나는'(.....) 모 3인조 모임에서 목이 찢어지도록 떠들다가 즈라신을 중심에 놓은 얼키고 설킨 개판 오분전 인간관계의 절대강자 maki(사이트명 한중망유閑中忙有) 씨를 정줄놓고 찬양하며 엎디어 경배를 바친 김에 - 그게 대체 몇 주 전 얘기인지는 묻지 않는 게 예의입니다 - 굳은 손도 풀 겸 겸사겸사 SS 해삼의 맛(ナマコの味)을 두르륵 번역해 보았슴다. 함께 스위티에를 즐겨주신 비아이 님과 사예 님께 바칩니다. 앞으로 한동안 이 코너에선 maki씨 러브를 세상에 전파하는 데 열과 성을 다해볼까 고민 중입니다. 질은 믿지 마십쇼. 나한테 뭘 바래요.

해삼의 맛





먹는 것은, 사는 것의 기본이다.



음식이 남아도는 요즘에는 곧잘 잊혀지기 십상인 그 이치를, 오랜 방랑생활에서 뼈에 사무치게 깨달았다.

선생님이 주워 주시기 전까지 나는 얄짤없는 전쟁고아였고, 누구도 입에 밥을 넣어주지 않는 이상 굶어죽지 않으려면 발로 뛰어 조달해야 했다.

따라서, 눈앞에 있는 걸 먹을 수 있나 없나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버릇이 당연스럽게 몸에 배었다고 한들 누가 날 책망할까.

암만 보기에 좋아도 꽃이 피었으면 대부분, 먹지 못한다.
봉오리가 나지 않은 새싹일 때 먹어치우던가, 꽃이 지고 열매가 익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울러 색이 지독스럽게 화려한 것은 독이 있다는 사인이므로, 주의를 기울일 것.

이 정도가, 중독되지도 굶어죽지도 않고 힘든 방랑 시절을 이겨내면서 배운 지혜의 전부였다.




선생님을 만나 어쨌든 의식주를 대강은 보장받은 후로도, 한 번 몸에 밴 습관은 좀처럼 벗어낼 수 없었다.

내게는 염불이나 다를 바 없는 강의 도중에 문득 눈을 떠보니, 줄줄이 늘어선 작고 어린 등이 시야를 메운다.

너나 할 것 없이 성숙과는 거리가 멀었다. 초목에 비유한다면 그야말로 한 입에 먹기 좋은 새싹.

나는 (나도 고만고만한 나이였지만) 만약 먹는다면 누가 제일 맛있을지를, 시간 죽이는 셈치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차근차근 음미하며 이리저리 헤매던 시선이 한 곳에서 멎었다.

저 아이. 맨 앞줄에 앉은. 턱을 괴고 숨소리 하나 없이 선생님을 똑바로 바라보는, 동그스름한 뒷모습.

저 녀석만은, 다른 애들과 뭔가 다르다.

정성들여 지은 옷과, 가지런히 다듬은 (성질나도록 찰랑찰랑한) 머리칼.
언제나 가져오는 눈이 튀어나오게 호화로운 도시락을 절반 이상 남겨가는 탓에 (편식하는 놈의 정신머리는 나로선 이해가 불가능하다) 발육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도톰하고 매끄러운 뺨도, 튼살이니 거스러미와는 인연이 없는 보들보들한 손발도, 베어물면 몰캉몰캉하고 찹찹할 것 같다.

이를테면, 녀석은 지저분한 들개가 아닌 집안에서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 청결한 애완견이고, 벌레와 병해에 시달리는 야생종이 아닌 철저한 관리 밑에서 밭에 정결히 늘어선 작물인 셈이다.

지금까지 직접 손은 뻗지 못하고 그저 곁눈질로 바라보기만 했던 종류다. 흥미가 일었다.

먹어보면, 어떤 맛이 날까.

얼토당토 않은 공상은 대개 그쯤에서 슬슬 되돌아온 졸음에 가로막힌다.

비어져나오는 하품을 깨물며, 품에 안은 칼에 기대어 나는 눈을 감았다.




「이 새꺄, 일어나」

세 번째로 퍼뜩 깼을 때 강의는 끝난지 오래였다.

눈앞에는 보드라운 양다리로 버티고 서서 팔짱을 끼고 있는 한껏 위세를 부리는 예의 꼬맹이가 있었다.

「선생님 말씀 안 듣고 허구헌날 자빠져 잠이나 잘 거면 냉큼 꺼져」

등뒤에 떨거지들을 거느리고 으르렁대는 폼이 생각 외로 그럴싸했다.
애완견치고는 보기보다 근성이 있는 모양이었다. 더더욱 좋다. 몰랑하기만 만 고기보다야 다소 씹는 맛이 있는 편이 훨씬 맛있는 법이다.

「그리고, 뭣 때문에 허구헌날 날 흘금흘금 쳐다보고 지랄이야? 해보자는 거냐!?」

어머머, 눈치챘어? 감은 제법 좋다?
굴러떨어질 듯한 커다란 눈을 부릅뜨고 캬앙캬앙 짖어대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저도 모르게 본심이 입에서 미끄러졌다.

「그치만, 맛있어 보이거든 너」

노호성이 뚝 멎고, 영락없이 미지의 생명체와 마주친 눈이 한계까지 벌어졌다.

「한 번 먹어봤으면 좋겠다 싶어서. ……미안타」



***



「이제야 알겠군. 다카스기의 독 품은 꽃과도 같은 취미 고약한 겉모양은 네놈이 심어준 트라우마 때문이었나」

어쩌다 이 얘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카츠라는 집주인이 내놓을 깜냥도 없었던 차를 부엌에서 직접 끓어와서 멋대로 홀짝이며 말했다.

「나한테 먹히는 게 열라 무서웠나벼. 뭐 어때, 결과적으론 잘됐잖아. 걔가 우물안 도련님 졸업하는 계기가 됐구」
「허나, 아무리 보아도 저건 도가 지나치네」

잘되긴 뭐가 잘됐다는 겐가. 저건 개구쟁이는커녕 이미 짐승이 아닌가. 네놈은 간접적으로 에도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게야. 최악의 테러리스트 탄생에 일조한 죄를 머리를 숙이고 바다보다 깊이 반성하게나.

제 사정은 아득한 저편으로 폭투하고 설교를 늘어놓는 카츠라를 무시하고, 긴토키는 카츠라가 가져온 양이만쥬를 집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꽂히는 게 있지 않우? 거 뭐냐, 해삼을 먹을 마음을 다 품은 용자가 있듯이 말야. 의외로 썩 괜찮을지 모른다구?」

카츠라는 흘긋 시선을 들어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먹을 생각일랑 말게」
「……왜?」
「맛이 좋아봤자 배탈이나 나지」

단호히 잘라 말하고 차를 홀짝이는 모습을 곁눈질하며, 긴토키는 만쥬를 깨물었다.
감칠난 단맛이 혀에 착착 감겨들며 녹아내렸다.

태도는 방자할지언정 근거없이 단정을 내릴 놈이 아닌 줄은 오랜 사귐으로 속속들이 알고 있다. 필경, 먹어본 적이 있을 게다. 그리고, 배탈이 난다 해도 다시 먹고플 만큼 극상의 맛이었던 게다.

───할 수 없구먼. 난 이걸로 참지 뭐.

놓쳐버린 해삼의 맛에 다소간의 미련을 느끼면서, 손안에 남은 만쥬 덩어리를 입안에 털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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